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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다비식 (나유진 저)

코딩펀 2021. 4. 4. 03:41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독특하고 애잔한 느낌으로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다. (이 정도의 필력이 되야 신문 문예에 당선되나 보다.)
★★★★★

무엇이든 목숨 가진 것으로는 태어나지 말게 해주시오. 바람이어도 좋고,물이어도 좋고, 바위여도 좋지만, 번뇌의 옷 입고 생명있는 것으로는 다시 나게 하지 말아주시오. 부처님, 천지 신령님께 간절히 비오.

눈을 감고 성냥을 긋는 노인의 얼굴 위로 짧은 순간 미소같기도 울음같기도 한 표정이 떠오른다.

붉은 혀를 놀리며 순식간에 천장까지 솟구친 불길이 지붕울 뚫고 솟아오르고, 밭을 가로질러 산 가장자리의 키작은 소나무에 매어놓은 늙은개가 발작을 일으킨 간질병 환자처럼 푸들푸들 떨며 하늘을 향해 길게 신음소리를 내지를 때, 총총이 별을 안고 넓게 펼쳐진 어둔 하늘에서 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끌며 북동쪽을 향해 날아가고, 숲에 둥지를 틀고 밤잠을 재촉하던 새들이 난데없는 불기둥에 놀라 별이 사라진 어둔 하늘 쪽으로 높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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