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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 지브리 음악감독과 뇌과학자의 이토록 감각적인 대화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저, 이정미 역 / 현악출판, 2023.11.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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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 지브리 음악감독과 뇌과학자의 이토록 감각적인 대화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저, 이정미 역 / 현악출판, 2023.11.30)

코딩펀 2024. 8. 18. 00:51

대담집이다 보니 내용의 구성과 흐름의 체계성은 다소 떨어지나 음악을 포함한 인간의 언어, 감각, 인식 등 다양한 분야를 뇌과학의 시각으로 가볍고 편안하게 다룬다. 서체가 나름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 ★ ★

이미지 출처: kyobobook.co.kr

제1장 음악에 감동하는 인간

뇌가 커지면서 눈에만 속하는 것도 아니고 귀에만 속하는 것도 아닌 여분의 영역이 생겨났습니다. 그곳이 소위 '연합영역'입니다. 인간의 경우는 그 영역이 매우 커졌고요.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두 감각을 연합시킨 결과 생겨난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가짐으로써 세계를 '똑같이' 만들어 버린 겁니다. (p24)
'데카르트 좌표'는 시각적 좌표이고 청각적 좌표인 '극좌표'에는 거리와 각도밖에 없어요. 소리가 얼마나 멀리서 들리는지,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지, 그뿐입니다. 눈이 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습득할 필요가 있고, 귀가 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형성해야 하지요. 그래서 '시공간'이 언어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언어는 그렇게 생겨난 거예요. (p25)
그런데 지금은 현실보다 언어가 우선이 되었습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아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중에는 그림이나 음악 같은 예술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p36~37)
무언가를 말로 차근차근 설명할 때는 순서를 따르게 되지요. 논리란 그런 거니까요. 귀는 논리성 그 자체입니다. 눈은 귀와 성질이 완전히 달라서 한눈에 보고 이해하지요. <중략> 눈이 옳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전형적인 예가 '제논의 역설'이에요.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합니다. (p55~56)

제2장 감수성이 움트는 감각의 토양

알파벳의 경우, 아주 구조적인 원리를 따르지요. 단 26자를 연결해서 무엇이든 쓸 수 있으니까요. <중략> 여기서 아주 중요해지는 것이 '구축'입니다. 다시 말해 배열 방법이지요. 그래서 구조에 아주 민감한 사고를 갖게 됩니다. 한자에서는 모자라면 더하면 되고, 아니면 글자를 새로 만들어 내면 되지요. <중략> 구축성이 필요 없습니다. <중략> 알파벳 같은 글자라면 유한한 요소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근간부터 디지털적인 사고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p81~83)

제3장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저는 음악이 작곡자의 강력한 의식과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음 하나를 시간 속에 툭, 놓습니다. 기기서 여러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시간 속에 음악을 구성하는 건축 작업이 시작된 순간부터 쭉 객관적인 대상으로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127)
글의 기본은 리듬이에요. 글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리듬이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p137)
리듬을 시각으로 표현하면 '나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략> 나선 활동은 생물의 기본입니다. <중략> 알이 부모가 되고, 그 부모가 알을 낳는 과정을 오래도록 반복하다가 그것이 시간 속에서 점차 그 자리를 벗어나면서 자연이 다양한 형태로 영감을 발휘하고, 그것이 축적되어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진 겁니다. 그렇게 해서 5억 년에 걸쳐 인간이 됐어요. 생물이 지닌 진화의 운동성은 원운동이 그라지를 벗어나면서 실현되미 나선 형태가 되는 것이지요. (p140~141)

제4장 인간의 의식과 말

뇌에서 말초 기관으로 전달되는 신호는 원심성 신경을 통하는 구조이지요. 의향은 이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원심성 작용이에요. 전문가들은 이걸 '지향성', 즉 의식이 어떤 대상을 향하는 작용이라고 부르지요. (p155)
귀는 원심성이기도 하고 구심성이기도 합니다. <중략> 가령 우리는 시끄러운 곳에서 타인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있지요. 상대방 목소리의 주파수를 기준으로 그 외의 소리 유입이 억제되기 때문이에요. <중략> 반면에 눈은 한 방향이에요. 구심성밖에 없지요. 눈의 세포에는 귀 같은 억제가 작용하지 않는 거예요. (p156)

제5장 공감과 창조

그런 물리적인 공명 현상으로 또유 유명한 것이 '하위헌스의 추시계'인데요. 돌로 지은 집의 서로 마주 보는 벽에 추시계들을 걸어 놓으면 처음에는 시계추가 제각기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똑같이 움직입니다. <중략> 같은 맥락에서 오래 함께 산 부부 중 한쪽이 상태가 나빠지면 다른 쪽도 상내가 나빠지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요. (p192)
 말이란 그런 겁니다. 글을 읽을 때는 상대반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이해하려 하지만, 말을 들을 때는 상대방과 자신의 뇌가 뒤섞여서 반쯤은 자신이 말하는 느낌이 들지요. <중략>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논리가 아니라 '공명'이지요. (p209~210)
가령 아이에게 산수를 가르치면서 "알겠어?" "알겠어?"라고 억지로 이해시키는 거예요. 강제로 이해시키니 쾌감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산수를 싫어하게 되는 겁니다. 감각적인 영역에는 그런 일이 없지요. 강제 이햐가 없어요. (p211)
기본적으로 공감을 추구하면서 <중략> 개성일 끼워 넣는 것이 좋아요. <중략> 작품 어딘가에 개성을 표현할 필요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공감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독창성이란 새로운 공감을 발견하는 겁니다. (p221~223)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최고의 해답, 필연적으로 모든 조각이 제자리에 딱 들어맞는 해답이 반드시 있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요. <중략> 그렇게 보면 작곡가라고 해도 자신의 감성에 의존해서 곡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또 무엇이 달라지고... 생각하며 탐색하는 작업이지요. (p226)

제6장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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