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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하는 공무원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 문학동네, 2021.09.09.) 본문
일찌감치 이불을 펴고 베개를 가슴에 고인채 수면제 용도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다시 도로 앉아서 탁상등을 모로 비추고 읽다가 좀 처럼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역사에 흐르는 집단적인 아픔은 오히려 한 개인의 경험과 그로부터 전해오는 감정에 집중할 때 더 아프게 다가온다. 소설 속 화자의 입장에서나 같은 시선으로 이입되는 독자의 입장에서나... 다만, 이 소설에서 차용한 영혼, 꿈, 환상 등은 나와 같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전해주지 못한다. ★★★★

1부 새
1 결정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중략>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중략>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지금 밀물이 밀려오는 거다. <중략>
점점 빠르게 바닥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날마다 이렇게 밀물이 들었다 나가고 있었던 건가? 아래쪽 무덤들은 봉분만 남고 뼈들이 쓸려가 버린 것 아닌가? (p9~10)
2 실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거야?
도망칠 데가 없다고 느끼며 더듬더듬 나는 물었다.
내가 그만하자고 했던 일 말이야. 그걸 하다가 이렇게 된 거야? <중략>
그건 중요하지 않아, 경하야.
완곡한 긍정이 분명해 보이는 그 대답에 이어, 내가 내놓을 어떤 사과와 자책과 후회의 말도 거부하겠다는 듯 빠르게 인선이 다음 말을 이었다. 더이상 귀속말처럼 속삭이지 않는, 갑자기 모든 통증을 이겨낸 듯 또렷해진 목소리였다.
오늘 너한테 와달라고 한 건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부탁할 게 있어서야.
돌연한 생기를 머금고 번쩍이는 그녀의 두 눈을 피하지 못한 채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p58)
3 폭설
제주 집에 가줘, 라고 인선이 말했기 때문에 나는 이곳까지 왔다. 언제? 내가 묻자 인선은 대답했다. 오늘, 해 떨어지기 전에. (p64)
인선아, 하고 엄마는 나를 불렀어. 대답해보라, 나 알아보크냐? 내가 응, 하고 대답했을 때 엄마는 울지도, 나를 나무라지도, 소리쳐서 간호사를 부르지도 않았어. 대신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지. 언제부턴지 모르게 내 손을 꽉 붙잡고서. 여전히 새카맣게 눈을 빛내면서.
내가 다친 걸 진작 알았다고 그때 엄만 말했어. 병원에서 연락 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내가 축대에서 떨어졌던 그 밤에 꿈을 꿨다고 했어. 다섯 살 모습으로 내가 눈밭에 앉아 있었는데, 내 빰에 내려앉은 눈이 이상하게 녹지를 않더래. 꿈속에서 엄마 몸이 덜덜 떨릴 만큼 그게 무서웠대. 따뜻한 애기 얼굴에 왜 눈이 안 녹고 그대로 있나. (p81)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 시피 걸었대. <중략>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빰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p84)
그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 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p87)
4 새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p95)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일차선 도로가 휘어든다. 박명 속에 수천 그루의 높은 나무들이 눈발 속에 흔들려, 마치 내 오랜 꿈속 검은 나무들이 아직 살아 있던 풍경 같다. (p123)
5 남은 빛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p134)
대만에서도 삼만 명, 오키나와에서는 십이만 명이 살해되었는데요.
인선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침착했다.
그 숫자들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곳들이 모두 고립된 섬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p136~137)
6 나무
나한테는 앞장서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바닷게처럼 옆걸음을 걸어서 나를 따라왔어요. 두 사람의 발자국을 조릿대 잎으로 슬어지우면서. (p163)
2부 밤
1 작별하지 않는다
검고 둥근 그 형상이 흔들리며 길어졌다. 웅크렸던 몸이 펼쳐지는 거다. 무플이 펴지며 두 발이 땅을 디뎠다. 팔에 파묻혔던 얼굴이 나를 향했다.
.... 경하야. (p187)
제목이 뭐야?
밀페용기에 담긴 것을 나는 숟가락으로 덜어 주전자에 넣다 말고 인선이 물었다.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중략>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중략>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중략>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p191~193)
2 그림자들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헝겊들이 서로 스치는 것 같은, 젖은 흙덩이가 손가락 사이로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어디선가 새어나왔다. 인선의 것과 닮은 소리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녀가 아니라 서울의 병실에 누운 인선이, 손이 아니라 성대를 다친 듯 목을 울리지 않으며 내던 무성음과 어딘가 흡사했다. p(204)
..... 누군가 더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어. <중략>
뭔가가 더 남아 있어. 아미가 이렇게 있다 가도 나도. <중략>
너도 그럴 때가 있어? <중략>
언제부터 그랬어? <중략>
뼈들을 본 뒤부터야. <중략>
..... 만주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중략>
그 가을에 유골들이 발굴됐어.
어디에서? <중략>
제주공항, 하고 대답하며 인선이 목소리를 낮췄다.
..... 활주로 아래에서.
비행기 앞문에 비치된 신문을 골라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1면 아래쪽에 현장 사진이 실려 있었어. (p209~210)
3 바람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유골 한 구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어. <중략>
그 유골만은 구덩이 벽을 향해 모로 누워서 깊게 무릎을 구부리고 있었어. <중략>
그 유골만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이유가, 흙에 덮이는 순간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그때 들었어. 그 유골의 발뼈에만 고무신이 제대로 신겨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고무신도, 전체 골격도 크지 않은 걸 보면 여자거나 십대 중반의 남자인 것 같았어. <중략>
그가 만약 십대였다면 출생 연도가 엄마와 얼추 비슷할 것 같았어. (p212)
4 정적
큰 산 아랫마을의 모든 대문을 두드려 끼니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늙은 걸인이 오직 한 여자에게서 밥 한 그릇을 얻는다. 고마움의 표시로 그가 말한다. 내일 통트기 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산을 오르라고. 산을 넘어갈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노인의 말대로 여자가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해일이나 폭우가 마을을 삼킨다. 예외 없이 그녀는 뒤돌아본다. 그곳에서 돌이 된다. (p239~240)
물속으로?
응, 잠수하는 거지.
왜?
건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돌아본거 아니야? (p242)
눈을 뜨자 여전한 정적과 어둠이 가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눈송이들이 우리 사이에 떠 있는 것 같다. 결속한 가지들 사이로 우리가 삼킨 말들이 밀봉되고 있는 것 같다. (p243)
아亞 자 문살에 불투명 유리를 끼운 미닫이문의 턱을 넘어 그녀가 방으로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가기 전에 나는 뒤돌아본다. 촛불이 사라진 마루와 부엌의 어둠이 검은 물속 같다. 촛불의 음영이 번져 있는 방으로 발을 들이자, 난파한 배 아래 공기가 남은 선실로 들어온 것 같다. 밀려들어올 물살을 막듯 나는 어깨로 문을 밀어 닫는다. (p245~246)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씩 닦아가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오빠와 막내가 안 보였대. <중략> 보리밭에 죽어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을, 아래에 동생이 깔려 있는지 밀어가며 다시 살폈대. 혹시나 싶어 불탄 집터로 가본 건 땅거미가 내릴 즈음이었어.
거기 있었어. 그 아이는. (p249~250)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p251)
5 낙하
내려가고 있다.
수면에서 굴절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중력이 물의 부력을 이기는 임계 아래로. (p267)
그후로는 엄마가 모은 자료가 없어, 삼십사 년 동안.
인선의 말을 나는 입속으로 되풀이한다. 삼십사 년.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p281)
6 바다 아래
인선이 바닥에 뉘어 내 쪽으로 천천히 밀어준 그 책의 표지를 나는 일별한다. 전국 단위 유해 발굴을 잠정 마무리하며 발간된 자료집이다.
...... 활주로 아래 뼈들의 사진을 내가 본 것도 그때야. (p285)
물론 추측할 수 있어. 그 사람이 외삼촌이었다면 어떻게든 이후에 섬으로 돌아왔을 거라고......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때부터 엄마 안에서 분열이 시작된 건지도 몰라. 두 개의 상태에 그날 밤의 오빠가 동시에 있게 된 뒤부터.
갱도 속에 쌓인 수천 구의 몸들 중 하나. 동시에, 불 켜진 집들의 대문을 두드리는 청년. 그곳에서 옷을 얻은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사람. 이건 얼른 태워버리십시오. 피투성이 수의를 마당에 남기고 암흑 속으로 달려 사라지는 사람. (p291~292)
3부 불꽃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p316)
그 겨울 삼만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 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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