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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하는 공무원
소년이 온다 (한강 저 / 창비, 2024.12.24.) 본문
장이 바뀔 때마다 "어, 이번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되지?" 이런 궁금증을 자아내다가.."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탄식어린 한숨이 새어나온다. 개인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5.18의 순간과 그 이후의 삶을 체험하듯이 증언한다. 어떤 예술보다 뛰어난 문학의 진수. ★★★★★
1장 어린 새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떻하지.
너는 눈을 가늘께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 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은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중략>
네모난 밤색 뿔테 안경을 쓴 작은형이 부루퉁한 얼굴이 떠올랐다가, 분수대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박수 소리에 묻혀 희미해진다.(7p)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볼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어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 (p13)
2장 검은 숨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엇이 가만히 나에게 닿아온 것은. 얼굴도 몸도 말도 없는 그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몰라 난 잠자코 기다렸어. 혼에게 말을 거는 법을 생각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도 그 방법을 배운 적 없다는 걸 깨달았어. (48)
너를 묻득 떠올린 건 그 낯설고 생생한 밤이 끝나갈 무렵, 먹색 하늘에 마침내 파르스름한 새벽빛이 배어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어. (p49)
한번에 수천개의 불꽃을 쏘아올리는 것 같은 폭약 소리. 먼 비명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거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그때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p64)
3장 일곱개의 뺨
그 순간 왜 분수대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짧게 감은 눈꺼풀 속에서 유월의 분수대가 눈부신 물줄기를 뿜었다.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던 열아홉살의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었다.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던 열아홉살의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들이 내쏘는 햇빛의 예리한 파편들이, 달궈진 눈꺼풀 안쪽까지 파고들어 눈동자를 찔렀다. <중략>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렸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69)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불렀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p89~90)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저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기인의 도적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근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p95)
꿈속처럼 느린 걸움으로 남자들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 여자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니, 말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니, 여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이고 있을 뿐이다. 그 입술의 모양을 그녀는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서 선생이 원고지에 펜으로 쓴 희곡을 그녀가 직접 입력해 삼교까지 봤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선가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p102~103)
4장 쇠와 피
유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이 정말 유서와 함께 있었습니까? <중략>
여기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에 대해 선생에게 말해야 합니까?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중략>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131~133)
5장 밤의 눈동자
그러다 너를 본 건 금남로에서였어.
가톨릭센터 외벽에 방금 학생들이 붙여놓고 간 사진들을 들여다 봤을 때 였어.
언제든 경찰들이 나타날 수 있었어. 그 순간도 어디서 날 지켜보고 있는지도 몰랐어. 나는 재빨리 사진 한장을 뜯었어, 둘둘 말아서 쥐고 걸었어. <중략>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어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p172)
6장 꽃 핀 쪽으로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마지막 날엔 왜 어미니만 갔냐고! 말해봤자 안 들을 것 같았다니, 거기 있으면 죽을 걸 알았담서, 다 알고 있담서 네가 어떻게! <중략>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p183)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p184)
느이 작은형 공부하라고 너하고 따로 방 한칸씩을 주고, 사글세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제 싶어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었제. 뒷일이 그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겄냐. 콩알맨이로 자그마한 그 남매가 들어온게, 위에 형제들하고 나이가 뚝 떨어진 너한테 친구가 생긴 것이 보기 좋았다이. (p186)
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이 집으로 안들어왔으면 네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 그러다가 느이 둘이 밴드민턴 침스로 웃던 소리가 생각나면, 죄 받제... 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면 큰 죄를 받제. (p187)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햋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그 순간을 집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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