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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등장한 '요상한' 기준

코딩펀 2021. 10. 24. 18:04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안)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다. 올해 12월에 총론 주요사항의 발표에 앞서 진행되는 공청회이다. 공청회의 진의야 어떻든, 대국민 의견 수렴, 또는 숙의하지 못한 채 내놓은 교육과정(안)에 대한 외부의 시각과 비판의 정도를 '측정'하는 역할은 어째든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청회의 주체가 총론 연구진이기는 하나, 공개한 내용이 그들만의 순수한 연구 결과만이 아님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나로서는 이번에 발표된 중학교 교육과정을 접하고는 허탈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내가 느꼈던 허탈함의 근원은 특정 교과의 시수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저 철학과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결정되는 국가 정책의 가벼움에 있다.  

저자는 어떤 교과의 시수를 더 늘려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교육의 비전을 고민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의가 세워졌다면 어느 한쪽의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비판을 받지 않겠다는 '요행'은 그 동안 수차례 개정된 국가 교육과정에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괴상한' 기준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34시간을 기준으로 하되, 학교 및 학생의 필요에 따라 학교 자율 시수를 확보하여 68시간 이상 편성, 운영할 수 있다."라니...  학교가 자율 시수를 확보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당연히 학교장의 자율이며, 그 원칙을 교육과정 총론 상에서 굳이 특정 교과의 기준 수업 시수를 제시하는데 추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국가 교육과정에서 굳이 기재할 필요 없은 '부언'이며, 모든 학교가 따르는 교육과정의 총론적인 '기준'으로서 그 의미를 더욱 모호하게 하는 '중언'이다. 즉, '중언 부언'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중언 부언의 문구를 중학교 교육과정에 넣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 교육이라는 시대적, 사회적 요구는 수용해야 하는데, 시수가 줄어들까 반대하는 특정 집단으로부터의 비판 또한 받기 싫은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그야말로 지금의 쟁점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린 '전략'에 불과하며, 철학의 부재에 따른 결과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바로 이 '요상한' 기준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지 않겠다는 요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충분한 연구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정보 교육은 34시간으로 충분하며, 더 이상의 시간 투자는 불필요하다고 결정 내릴 수 있다. 만약 그러한 결정을 숙의를 통해 내렸다면 그 결정으로 나아가고 그에 따른 비판은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교육과정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너무나 당연한 답변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갈 지금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이 순간 이 식상한 질문을 다시 입 밖으로 꺼내어 확인할 수 밖에 이유는 그에 대한 고민과 철학은 결코 식상하거나 단조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7년의 시간을 허비하였음에도, 다시 또 그 과정을 반복하려 하는가? 국가교육위원회로 교육과정 업무가 넘어가지 전에 큰 소란없이 조용히 지나가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 것인가? 국가 교육과정을 고민함에 있어 과연 철학과 비전은 존재하는 것인가?

국가의 정책에 있어 특정 이익 집단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철학과 숙의, 그로부터 고독하고 단호하게 결정 내린 대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의에 따라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직하게 한발 한발 나아 가야한다. 국가 정책을 입안하는 자가 철학과 뚝심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선 학교의 경험이 있는 교사 출신의 전문직 공무원이 이러한 능력에서 일반직 공무원 보다 현저히 부족하다는 그간의 평가가 동 조직의 전문직 공무원인 나에게는 폐부에 깊숙이 들어온 칼끝처럼 차갑고 아프게 느껴진다. 

오늘은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운 하루다. 한동안 잠을 청하지 못할 거 같다. 번뇌의 밤이 다시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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