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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하는 공무원
감정의 기원 : 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칼 다이서로스 저, 최가영 역 / 북 라이프, 2026.01.09.) 본문
정신 건강에 관한 책인데 마치 국내 유명 소설가의 산문집을 보는 듯 문학적이며 내러티브가 강하다. 심지어 저자는 소설과 같은 약간의 흥미진진한 반전도 시도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 장 (chapter)을 읽기 시작하면 그 장(chapter)을 중간에 끓을 수가 없다.
응급 정신 의학과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환자와의 상담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환자가 살아온 삶의 괘적, 이를 통해 판단한 의학적 소견 등을 문학적 감성으로 풀어낸다. 극단으로 치닫는 미지의 감정 영역에서 신경과학이 살짝 들춰서 보여주는... 정신 의학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신의 과학 기술도 곁들여서.
저자는 정상인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환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그들의 감정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기술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표면적인 '증상'이 아닌 그들의 '시점'으로 감정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그래서,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저 세상과의 벽을 허물어 나에게도 그 감정이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 마져 엄습한다. "4장. 상처가 건네는 이야기", "5장. 그들이 내 머리를 해킹해요."가 그렇다.
정신 의학 관련 번역서에서 문학적 감수성이라니... 최근의 독서에서 느낀 신선한 경험이다. 저자의 의도를 잘 살린 역자의 번역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 ★★★★★

프롤로그_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진 세상
인간 마음은 이런 실들을 실체화해 저마다 이야기를 쌓아갈 내면의 뼈대를 구축하며 작동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순간들과 경험들은 가느다란 씨실이 되어 날실과 교차한다. 그렇게 날실 기둥이 씨실로 덮여 가려지면서 우리네 이야기에 독특한 색조화 결이 생기고 정교화고도 아름다운 무늬가 뚜렷해진다. 이 책은 내면의 옷감이 해져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속살이 드러난 마음의 날실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p11)
정신의학의 핵심은 환자들의 순탄하지 않은 현실을 최대한 그들의 처지에서 감지하고 체험하는 것이고, 이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 모두의 왜곡된 시선을 걸러야 가능해진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이, 침묵하는 이, 고통받는 이, 길을 잃은 이들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들여오는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당사자 말고는 알 길이 없다. (p12)
정신의학과 상상과 과학기술. 서로 독립적인 이 세 가지 영역은 힘을 합쳐서 마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 공간의 틀을 세울 수 있다. 셋 사이에 공통점이 별로 없다는 특징 덕분이다. (p12~13)
세 영역은 각각 마음속 감정이라는 신비를 여러각도에서 조명해 한 장면에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게 하는 렌즈일 뿐이다. 이렇게 다른 성질의 관점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고작 여전히 흐리멍덩한 해상도의 이미지만 그려내는 정도다. (p15)
이 신기술은 인간종이 가지의 끝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생명 가계도에서 지구 생명의 날실이 시작되는거의 첫 출발점에 지라한 한 생물종으로부터 이미 오래전 진화가 만든 소박한 작품 하나(채널로돕신 유전자)를 빌려와 사람 몸에서도 작동하도록 끌어들였다. (p25)
제1장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남자
제2장 어느 정년퇴직자의 변신
정신의학은 의학을 다루지만 언어로 펼치는 과학이라 가장 효과적인 치료 역시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정신의학에만 독특하게 허용되는 추상성 덕에 나는 매일 단어와 이미지에 흠뻑 빠져 이야기 속에서 우화적 의미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p95)
심지어 우리는 양극의 반대쪽 '극'인 우을증과 조증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아직 감조차 못 잡고 있다. 조증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마무리되기 일쑤고, 많은 환자가 조증과 우울증 사이 혹은 우울증과 경조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중략> 혹시 조증 환자만 유독 과소비하는 특별한 신경 물질 같은 게 있어서 자원 고갈의 결과로 우울증에 빠지는 것일까? 아니면 위기가 지나간 뒤 조증 상태의 전원을 끄는 시스템이 교정 견적을 크게 잡고 너무 확 잡아 내리거나? (p111)
제3장 외향인 그 여자, 내향인 그 남자
생물학에서 사회적 상호작용만큼 불확실하고, 그런 까닭에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p128)
이와 같은 무의식의 예측 모델이 계속 돌아가게 할 때 두뇌의 연산 작업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 내향인이나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친 모든 이의 경우는 이 소모성 자원이 신경회로 수준에서 급격히 고갈된다. 반대로 이 두뇌 활동을 위한 자원이 유달리 풍부한 사람은 진정한 외향인이어서 쉼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살아갈 수 있다. (p130)
실제로 2011년 우리 연구팀은 앞이마엽겉질 흥분성 세포의 활동성을 광유전학 기술로 증가시켰을 때 다 자란 생쥐의 사회적 행동이 두드러지게 감소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광유전학적 조작이 움직이지 않는 - 그렇기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 물체를 탐색하는 것 같은 비사회적 행동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p149~150)
우리는 정보의 사각적 흐름을 휴대전화 화면 안에 압축하거나 사회적 데이터 전체를 이메일, 게시물, 문자 메시지라는 형식으로 단순화한다. 상화작용의 회차마다 오갈 데이터의 양을 줄이는 이런 기술들은 하나하나가 일종의 절연제 역할을 하고, 원하는 이에게는 단벌상 사회적 이벤트들의 발생 빈도를 높여준다(그만큼 오해도 더 자주 빚는다). <중략> 상호작용당 1브트(즉 '좋아요' 아니면 '싫어요'의 양자택일)의 데이터 양 수준으로 말이다. 이 마지막 1비트는 밀도가 어마어마해서 모두의 이목을 독차지하고 열정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1비트 데이터에 사회적 맥락과 인간의 상상력 - 인간 대뇌겉질에 모델이 내장되어 언제든 가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능-이 가득 충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p158~159)
제4장 상처가 건네는 이야기
경제성격장애 호나자들은 페부를 찌르는 공허함과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라는 이 약점을 혼자만의 비밀로 지키려고 앴느다. 또 몇몇은 소리 없는 구원이자 저주이기도 한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한다. 바로 팔, 다리, 복부 같은 곳을 스스로 베어서 피부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p182)
맨살을 일부러 긋는 것처럼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 행동에서 큰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 또한 경계성격장애의 특징인데, 심하면 집착 수준으로 자해에 매달린다. <중략> 아마 다른 성격의 아품이 이미 존재할 때 자해를 하면 훨씬 더 깊고 큰 내면의 상처가 가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어린 시절 그들의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새긴 장본인은 종종 부모다. (p190~191)
제 살을 칼로 긋는 게 경제성격장애만의 고유 특징은 아니지만 이 자해행위로 얻는 보상은 경제성격장애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 면에서 살을 베는 자해 행동은 격해진 환자의 심리 상태를 알려주는 더없이 확실한 측량 지표가 된다. (p193)
경계성격장애 환자들은 가치 할당이나 가치 변화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극단적이기 쉽다. 가령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지인이나 새로 만난 정신과 의사를 금방 단짝 친구, 가장 믿음직한 의사라는 한 범주의 원형으로 대하는 식이다. 이런 긍정적 분류 인식은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전복될 수 있다. 의사의 실수를 알아채거나 짝꿍의 관심이 불충분하다고 느낄 때 상대를 최상에서 최하로, 끔찍하리만큼 부정적인 존재로 전락시키는 가치 전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p196)
어릴 때 경험한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고삐의 활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 까닭에 경계성격장애 환자는 고삐에서 시작되는 도파민 신경회로나 기타 관련 회로로부터 피어난 통제 불능의 부정적 감정에 갇힐 수 있다. <중략> 살을 베는 자해는 경계성격장애 환자 내면의 이런 부정성을 드러내는 신호일 수 있다. 자해 행동은 어린 시절 경함한 일방적이고 이해할 수 없던 느낌에 자신이 조절할 수 있고 납득되는 날카로운 통증을 새로 덮어씌움으로써 이 부정성을 재측정하는 것일지 모른다. (p198)
장기적으로는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순해지는 경계적 증상들의 특징 때문에 그의 상태가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어다. 대신 시간이 길어지면 스스로 생을 끝내는 결말로 어어질 수 있고 그 비율은 15퍼센트나 된다. 인간사의 어떤 우환과 비교해도 높은 자살률이다.(p207)
제5장 그들이 내 머리를 해킹해요
조현병이 있으면 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들의 취향이나 의도를 알지 못하는 탓에 몸의 반응을 외부 간섭의 결과로 해9석하는 것일 수 있어요. (p238)
잠에서 깰 때를 항상 처음 잠깐은 현실 혹은 자아 감각이 희미하다고 느껴지지만 곧 쫀쫀한 짜임새로 돌아가면서 현실과 자아가 다시 제 모습을 갖추기 때문이다. (p239~240)
조현병에는 부정적인 증상이 있는데, 그런 증상들은 기본적이고 유용한 사고조가 할 수 없게 방해합니다. 의욕과 사회적 흥미를 잃는 무감동 증상이 그중 하나예요. <중략> 환자들이 자신이 직접 짠 생각 경로에서 방금까지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 잊어 버리는 것처럼요. (p243)
내가 나를 통제한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착각이다. 본대 생각은 본능이 내가 뭘 원하는지를 결정한 뒤에만 정돈된다. 가상의 생각들은 그제야 거꾸로 차례가 매겨져 배열되고 입력된다. (p244)
제6장 많이 먹거나 많이 굶거나
인지행동요법은 뒤엉켜 있는 행동인지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구분해 해결하고, 세계 밀어붙이기도 하면서 영양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편 약물은 완치 치료는 되지 못한다. 질병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증상만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p282)
그런 두 병 사이에 뜻밖에도 교집합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집합 안에서는 둘이 공존할 수 있고 심지어 상부상조까지 한다. 둘 다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어야 만족한다는 것도 맞는 얘기지만, 내가 보기에 둘의 양립은 훨씬 심오한 겅질을 갖고 있었다. 둘 다 인간 욕구를 밟고 우뚝 선 자의 표현이자 제 몸을 해쳐가며 얻은 해방이라는 점에서다. (p287)
이 주제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을 때 과학이 내놓은 답은 뜻밖에도 허기와 갈증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 사이의 성취반응적(어떤 욕구가 있을 때 그것을 해소하려는 행동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만족을 느끼는 동물의 반응-옮긴이) 역학이었다. (p301)
제7장 우리는 시작한 곳에서 종말을 맞는다
우리 신경회로, 우리의 기쁨, 우리의 가치는 모두 언제 어떻게 끊어질지 모를 가느다란 신경가닥들을 따라 흐른다. 이 신경가닥은 내 기억을 품은 연결고리이자 내 자아의 투영이다. (p342)
원시반사는 늘 거기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씨실과 날실이 엮어낸 극기와 인지적 제어라는 고급 기능에 덮여 수십 년을 잠잔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그러다 천이 해지고 구멍이 나면 본연의 자아가 다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전한 품을 간전한 손길로 찾으면서. (p346)
에필로그_ 과학이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뇌의 어느 부분에서든 몇몇 세포의 가짜 연관성 때문에 생기는 이런 비의도적 출력 현상은 더 넓은 맥락에서 수많은 정신질환을 관통하는 바탕 원리일지 모른다.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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